"선생님, 뻥치시네" 아이의 반응에 충격받은 교사
시사INLive 2013.12.11
ⓒ그림 박해성
한국 교사들은, 위상이 높은 데 비해 학생들로부터 받는 존경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기사를 보았다. 위상이 높다는 내용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학생들의 존경을 많이 받지 못한다는 내용에는 공감하는 바가 있다.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참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교사의 수업진행 능력과 학생을 대하는 태도, 소소한 말투나 눈빛,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생활지도까지, 전 방위적인 능력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획득 가능한 것이 바로 그 '존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만사가 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춘기를 통과하는 저 삐딱한 영혼들에게 존경받는 일은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에 교사들이 학생을 대할 때 취하던 반인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런 교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교조를 필두로 한 참교육운동과 진보 교육감들의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들이 과거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씻김이 되기도 전에, 그보다 거대한 사교육의 위력과 공교육의 무력이 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추겼다. 잘못은 크고 노력은 미흡했다.
잘못은 크고 노력은 미흡했다
우리 학교에 수업 잘하기로 유명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수업 중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연기를 해가며 입담을 풀던 그 선생님에게 귀담아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소리쳤다. "선생님, 뻥치시네~!"
아마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투를 자기도 모르게 뱉었나 보다. 어쩌면 선생님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서 아이는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태껏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로 아이들의 무례를 별로 접해본 일이 없던 그 '젊은 남교사'(남자 중학생에게 젊은 남자 교사는 일단 그가 무서운 선생이 아니더라도 위력적인 존재다)는 아이의 반응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점점 교사들에게 무례한 표정과 눈빛을 날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얼마 전에 수업 중 자꾸 조는 아이를 깨웠다가 자그마치 3초도 넘게 눈꼬리가 찢어져라 째려보는 아이 때문에 상처받은 일이 있었다.
사춘기의 정점에서 삶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설득이 되지 않는 훈육이나 벌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기다려줘야겠다 싶었다. 3일이 지난 후, 교실을 나가려는 나를 위해 예의 바르게 앞문을 열어주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나도 용기를 내 그 아이에게 펜을 하나 쥐여주면서 "이거 내가 좋아하는 형광펜이야. 이걸로 시험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이도 그동안의 시간이 지옥같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 이야기는 이제 반항이랄 것도 무례랄 것도 없을 만큼 더 심한 일들이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누군가의 불길한 예측대로 나빠지면 더 나빠지지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존경 혹은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게, 전사(前史)의 영향이 뒤늦게 어떻게든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면, 지금 우리 교사들이 학교에서 쌓는 노력과 공덕이 어떠하냐에 따라 10년 후 또 다른 모습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 하나하나가 노력한 일들이 지금의 불신을 씻어버리고 10년 후쯤엔 학생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교단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들 학교의 절망을 말하지만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학교야말로 정말 절망의 학교일 터이다.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잘못은 크고 노력은 미흡했다
우리 학교에 수업 잘하기로 유명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수업 중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연기를 해가며 입담을 풀던 그 선생님에게 귀담아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소리쳤다. "선생님, 뻥치시네~!"
아마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투를 자기도 모르게 뱉었나 보다. 어쩌면 선생님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서 아이는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태껏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로 아이들의 무례를 별로 접해본 일이 없던 그 '젊은 남교사'(남자 중학생에게 젊은 남자 교사는 일단 그가 무서운 선생이 아니더라도 위력적인 존재다)는 아이의 반응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점점 교사들에게 무례한 표정과 눈빛을 날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얼마 전에 수업 중 자꾸 조는 아이를 깨웠다가 자그마치 3초도 넘게 눈꼬리가 찢어져라 째려보는 아이 때문에 상처받은 일이 있었다.
사춘기의 정점에서 삶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설득이 되지 않는 훈육이나 벌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기다려줘야겠다 싶었다. 3일이 지난 후, 교실을 나가려는 나를 위해 예의 바르게 앞문을 열어주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나도 용기를 내 그 아이에게 펜을 하나 쥐여주면서 "이거 내가 좋아하는 형광펜이야. 이걸로 시험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이도 그동안의 시간이 지옥같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 이야기는 이제 반항이랄 것도 무례랄 것도 없을 만큼 더 심한 일들이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누군가의 불길한 예측대로 나빠지면 더 나빠지지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존경 혹은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게, 전사(前史)의 영향이 뒤늦게 어떻게든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면, 지금 우리 교사들이 학교에서 쌓는 노력과 공덕이 어떠하냐에 따라 10년 후 또 다른 모습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 하나하나가 노력한 일들이 지금의 불신을 씻어버리고 10년 후쯤엔 학생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교단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들 학교의 절망을 말하지만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학교야말로 정말 절망의 학교일 터이다.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