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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신자유주의화
이상훈 | 정책위원
스웨덴 사민주의체제는 무엇보다도 스웨덴식 노사관계의 산물이다. 역사적 타협에 기원을 둔 사민당정권 및 LO(스웨덴 노총)과 SAF(사용자단체) 간의 협조주의적 노사관계가 그것이다. 스웨덴은 90%가 넘는 노동조합조직률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같은 스웨덴 모델의 근간은 역사적 타협 이후 확립된 중앙집권적 산별 교섭체계다.
또한 이러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는 스웨덴 사민당의 사상 이념적 전통과 결합된다. 경제정책, 사회화정책을 집대성한 비그포르스와 소련식 사회주의와 혁명주의를 배격하고 점진적인 사민주의적 개혁을 정치이념화한 칼레비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스웨덴 체제의 주요구성요소는 거대기업 중심의 성장주의적 경제정책이다. 연대임금정책과 렌-마이드너 모델의 기본 구상 역시, 높은 고용률을 추구하는 동시에 거대 독점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에 기본 토대를 두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스웨덴은 거대 법인자본의 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왕성한 나라다. 스웨덴은 일찍이 독점기업을 용인하고, 차등 의결권을 부여하며, 아주 낮은 법인세를 유지해왔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와 거대 법인자본이 공존해온 셈이다. 실제로 1932년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은 1970년대 초까지 시장주의적인 성장모델을 선택했다. 평등주의적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동일업종 내의 임금평준화 정책은 경쟁력 낮은 기업의 시장 퇴출을 통해 산업합리화와 자본집중을 촉진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집권 초기부터 재정지출에도 매우 신중했다. 스웨덴은 전후 경제 호황기에 긴축재정 기조를 바탕으로 임금인상 자제, 간접세 인상 등을 통해 인플레를 관리했다. 시장 친화적 정책은 효율성을 높여 성장에 기여했고, 이를 기반으로 고용증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확대, 생산적인 복지, 삶의 질 향상 등을 성취해왔다.
다만 스웨덴식 성장경제 모델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구분되는 점은 성장과 함께 고용에 중점을 두면서도, 특수한 국내외의 역사적 조건들로 인해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과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을 결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스웨덴 모델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대안이라기보다는 냉전과 자본주의적 호황이 만들어낸 특수한 조건의 효과로 자본주의적 모순에서 빗겨나 있을 수 있었던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스웨덴은 더 이상 예외로 남지 못하고 여타의 서구유럽국가들과 엇비슷한 신자유주의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국적인 자본주의적인 성장을 보장해주었던 특수한 국내외적 조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쮀바덴 협약정신과 협조주의적 노사관계

스웨덴의 노사관계는 국가의 개입보다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간의 장기간의 협조주의적 협상을 특징으로 해왔다. 이러한 노사관계 정착의 기점이 되는 것이 1938년에 체결된 살쮀바덴 협약이다. 이 협약의 핵심내용은 첫째, SAF와 LO로부터 각기 3인씩 파견되는 대표들로 노동시장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단위나 산업단위에서 노사간 교섭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노동쟁의 절차를 제도화하는 동시에, 직장폐쇄도 어렵게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실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그 구체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이른바 살쮀바덴 정신이 바로 그것인데, 노사간 분쟁사항에 대한 LO와 SAF의 조정권한을 대폭 강화시킴으로써 분쟁사항이 국가의 직권중재나 노동법원을 통한 사법적 절차로 다루어지기 전에 노사중앙조직들이 가능한 한 자율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한편, 파업이나 직장폐쇄와 같은 대결을 되도록 피한다는 것이다.


협조주의적 노사관계의 정착과 계급교차연합의 형성 과정

살쮀바덴 협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스웨덴 노동운동은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자본가단체들 역시 매우 중앙집권적인 결속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SAF는 LO보다 앞서서 전국적인 중앙집권적 조직형태를 완성했다. 이에 반해 초기 LO는 소속연맹들을 확고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당시 건설부문노동자들은 스웨덴의 건설 산업이 국제경쟁으로부터 보호되는데다 스웨덴 특유의 기후조건에 힘입어 강한 교섭력을 가졌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LO소속의 다른 부문 노동자들보다 높은 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제조업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노동자 스스로 억제하는 계급 협조주의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으로 LO내에 가장 규모가 커다란 금속노련의 노선이 그러했다. 그 결과 1931년 현재 건설부문노동자들의 임금은 전체산업노동자들의 평균 시간당 임금에 비해 1.7배 높은 수준이었다.
LO는 이러한 노동자들 간의 격차와 입장 차이를 조정하지 못한 채 강한 결속력을 가진 SAF의 공세를 맞이해야 했다. 결국 LO는 수출부문 노동자들이 수출부문 자본가 및 사민당정부와 연합하고, 전투적인 노동자운동을 분쇄하는 대가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계급교차연합(Cross-class Coalition, 계급연합)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앙 단체교섭 틀의 형성

1980~90년대 스웨덴 노동운동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세의 핵심은 중앙교섭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스웨덴에서 중앙교섭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자본가단체인 SAF가 먼저 요구한 것이다. LO는 1952년에야 SAF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시 SAF의 입장에서 산업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 경쟁을 유도하기 쉬운 산업별 단체교섭보다는 중앙단체교섭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는데 보다 유리했다. 반면 LO의 입장에서는 LO산하 연맹들 간의 경제적조건과 입장차이가 컸기 때문에 중앙교섭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LO가 중앙교섭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1950년대에 극심했던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장기호황국면에 진입했는데, 호황은 노동에 대한 수요증가와 그로 인한 임금인상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물가인상과 뒤이은 임금상승이라는 인플레이션 순환을 일으켰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아온 집권 사민당의 입장에서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악순환이었다.
이에 따라 사민당은 LO에게 인플레이션 악순환 해결을 위한 임금동결을 요청하였고, LO는 사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1949~1950년, 2년간 산하연맹들에게 단체교섭을 갱신하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호황국면에서 이 같은 임금동결조치는 산하연맹들의 강한 불만을 낳았고, 1951년이 되자 LO는 산하연맹별 단체교섭을 허용하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23%대의 폭발적인 임금상승이 이루어졌고, 사민당정권과 LO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민당은 다시금 LO에게 임금동결을 요구했고, LO는 물가상승에 따른 생계비 상승분만큼만 임금인상을 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중앙 단체교섭 → (중앙교섭 결과를 전제조건, 즉 하한선으로 하는) 산업별 단체교섭 → 기업별 교섭 → 작업장단위 교섭]으로 이루어진 중앙교섭 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결국 스웨덴의 중앙 단체교섭은 노총 중앙이 집권 사민당의 임금동결 요청을 산하 노조들에게 강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스웨덴의 자본은 거꾸로 중앙 교섭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불황기에 자본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을 줄이고 투쟁하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목적은 일관되었다.


연대임금정책

중앙교섭이 단체교섭의 형식이라면, 연대임금정책은 중앙교섭을 통해 LO가 추진한 임금정책의 내용이다. 연대임금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충실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방대한 직무조사가 반드시 요구된다. 무엇이 동일노동인가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종 노동들 간의 난이도, 위험성 정도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체계적인 직무조사가 있어야 다양하고 수많은 이종 노동들 간의 임금격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그런 조사가 (거대한 물리적인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고)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하게는 이러한 격차와 또한 차이를 노동자 스스로 납득하고 능동적으로 해소하고 축소해 나갈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사 결과가 이루어진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기도 어렵고, 이것만으로는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평의회주의적인 이행(변혁)과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 차원에서 모색되어온 노동자 민주주의와 교통(communication), 대중의 지적 차이 감축이라는 사회변혁적인 과제들과 연관된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이 문제들은 임금정책 실행을 위한 직무조사라는 실무정책집행 차원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진다. 주체형성과 이행, 대중운동과 같은 차원이 아니라, 행정적인 정책집행 수준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한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노동자들 간의 계급적 통합과 연대는 그저 하나의 불합리한 현실의 모순, 말 그대로 실현 불가능한 난제일 뿐이었다.
행정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스웨덴에서 충분히 체계적인 직무조사에 입각하여 연대임금정책이 추진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LO가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한 방식은 임금격차를 낳는 원인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가능한 전반적인 임금균등화를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즉 임금격차의 원인이 노동의 난이도나 위험도이든, 기업들 간 수익성의 격차든 관계없이 가능한 한도에서 임금균등화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전체 노동자층의 임금상승률을 고임금 노동자층의 임금상승률보다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했다. 다시 말해 평등주의적인 임금균등화 정책이 위로부터 행정적으로 집행된 것이다.


연대임금정책의 확장과 변화, 렌-마이드너 모델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노동, 경제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어내는 연대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연대임금정책은 애초에 목적했던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했다. 거기에 고도성장에 힘입은 임금유동의 발생이 최초의 균열점을 만들어냈다. 임금유동이란 기업수준에서 최종 확정된 임금상승률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된 임금상승률을 상회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임금유동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임금유동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연대임금정책이라는 인위적인 절차와 임금정책으로 결정된 임금수준을 교정하여, 시장원리가 제약 없이 작용했을 경우에 결정되었을 임금수준으로 복귀시켜준 것으로 해석된다면, 결과적으로 중앙단체교섭이나 연대임금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낳지 못한 셈으로 볼 수 있다. 그냥 시장에 맡겨두면 마찬가지 결과일 것을, 공연히 절차만 복잡하게 만든 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금유동은 LO가 추진한 연대임금정책이 임금인상 억제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켜 버렸다.
이러한 문제점이 부각되자, LO 연구국의 연구책임자였던 마이드너는 “임금유동에도 불구하고 연대임금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임금유동에도 불구하고 보존되는 임금균등화를 그 효과로 꼽았다. 마이드너는 이후 LO의 경제학자인 렌과 함께 연대임금정책을 보다 확장하고 종합한 렌-마이드너 모델을 제시한다. 임금균등화를 추구하는 연대임금정책을 경기안정화정책(인플레이션 억제정책, 긴축정책), 산업합리화정책(산업구조조정),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확장-결합시킨 것이다. 그 후 렌-마이드너 모델은 종합적인 경제발전전략으로서 1950년대 후반 이후 사민당정권 경제정책의 골간이 된다.


렌-마이드너 모델의 핵심 정책 내용과 문제점

경기안정화정책 - 긴축정책 - 간접세 도입
렌은 긴축정책수단으로 간접세를 도입한다. 하지만 간접세는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기본이익과 상충된다. 렌의 논리는 간접세 재정수입의 일부를 가장 빈곤한 계층을 지원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이 간접세의 역진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렌은 정부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여 흑자예산을 유지할 것을 권유한다.

연대임금정책 - 저임금노동자지원, 산업합리화 촉진
연대임금제도는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LO는 연대임금제도를 통해 동일업종 동일노동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 기업규모나 이윤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연대임금제도는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임금을 양보하는 한편, 동일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중소자본은 퇴출(구조조정)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은 경쟁력 있는 거대 법인자본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과 결합되는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력의 원활한 이동을 지원한다. 성장하는 부문과 지역은 보다 많은 노동인력을 필요로 하고 쇠퇴하는 부문과 지역은 노동인력을 방출한다. 이때 방출되는 노동인력을 성장하는 부문과 지역으로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실업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연대임금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면, 저수익 기업들로부터 대량의 인력이 방출되기 때문에 이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알선, 재교육,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에 필요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 (겐트제도와 같은 실험보험제도도 그중 하나이다.)

강한 성장주의적 사고방식
이처럼 렌-마이드너 모델은 강한 성장주의적 사고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완전고용과 경제성장, 물가안정이라는 거시 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수요보다는 공급측 요인을 더 강조한다. 산업합리화, 경제효율화는 지상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렌-마이드너 모델에서는 중소기업이나 낙후지역의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경제구조의 균형을 이룬다는 식의 사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생산적 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구조조정 정책의 보조정책일 따름이다.


스웨덴 모델이 위기에 빠지면서 등장한 임노동자기금

본래 임노동자기금안은 민간 대기업들의 이윤 중 일부를 신규 발행 주식의 형태로 노동조합이 소유-관리하는 임노동자기금에 매년 의무적으로 적립케 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이 민간 대기업들의 지배주주가 되도록 한다는 웅대한 청사진이었다. 일부 논자들은 이러한 청사진이 사회주의적 이행의 다른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꽃으로 소개되는 임노동자기금은 실은 스웨덴 모델이 고유한 내적 모순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나오게 되었다. 특히 임노동자기금은 LO가 직면한 대내적 정당성위기의 산물이다.

스웨덴 모델의 모순과 LO의 정당성위기의 표출

연대임금정책은 고수익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연대임금정책은 점차 직업 내부 임금억제정책에서 직업 간 임금억제정책으로 전환되었고, 인플레이션과 투자축소, 노동자집단 간 분열의 원인이라고 공격받게 되었다.
중앙단체교섭은 기업 단위노조들의 역할과 권한을 위축시켜, 풀뿌리노동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 결과 다양한 비공인 와일드캣 파업들이 발생했고, 노총 상층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들이 표출되었다.
또 거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은 결과적으로 재산과 경제적 권력이 소수 사적 거대 주주들에게 집중되는데 일조함으로써, 사민주의운동의 평등주의적 이념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모순을 가진다.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둘 부각되자, LO는 임노동자기금안이라는 급진적인 정책안을 제출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LO의 급작스러운 제안은 1975년부터 1983년에 걸친 혼란스럽고 지루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자본가진영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결집한 반면, 사민당과 LO진영은 제 각각의 계급적 기반과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기반에 따라 분열했다.
게다가 기금논쟁이 진행되는 중에 폭발한 1979~1980년 세계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임노동자기금을 찬성 추진하는 진영이 기금안을 본래의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이행의 관점보다는 경제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강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된다.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노동자권력과 사회경제적 힘을 형성하기보다는 임노동자기금을 시장에 동원해서 불황을 해결하자는 정책대안이 그것이다.
또 사민주의운동의 평등주의적 이념과 배치되는 기금안의 여러 한계점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문제들보다는 효율적인 사회-경제운영 모델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부각 되었다.
그러한 변화를 거쳐, 마침내 1983년 사민당이 제출하여 의회에서 최종 통과된 실제 임노동자기금안 법안은 애초의 급진적인 성격과 취지가 무색해진 모습이었다. 당초에 계획했던 기금규모가 현격하게 축소되어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위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본연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시장원리 중심적인 기금운영방식이 전면화된 형태이었던 것이다.


임노동자기금안 실패의 원인 평가

첫째, 임노동자기금안은 부르주아 진영의 강한 결집과 격렬한 저항으로 변질되었고 실질적으로 좌초되었다.
둘째, LO와 사민당 진영은 노동자계급 내외부의 계급적, 이념적,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분열과 대립을 통합하는데 실패했다. 예컨대,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 특히 1980년대 들어 더욱 격렬해지는 공공노동자와 사적부문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경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셋째, 임노동자기금 논쟁은 위력적인 대중운동의 전개와 결합하지 못했다. 그것은 국회나 국가연구위원회와 같은 전통적인 조합주의적인 의사결정구조 내부의 정책적 논쟁으로 국한되었다.
넷째, LO는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로 제도도입을 추진했으나, 전반적인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자본가 진영과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줄곧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계급적 이념적 통합력이 부족한 가운데, 연대임금정책을 둘러싼 LO 내부의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맥락에서 제안된 경제 정책안으로서의 임노동자기금안만으로는 부르주아 진영의 격렬한 저항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임노동자기금논쟁 종결 이후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해체와 신자유주의화

변질된 임노동자기금안이 도입된 이후, 사민당 정권은 1980년대 내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민간기업의 수익성 제고와 시장규제완화, 복지국가 팽창억제를 뚜렷한 정책노선으로 삼아왔다. 이에 힘입어 스웨덴 자본은 자유화된 외환시장 등을 통해 상당량의 자본 해외이전을 단행했고, LO의 힘의 근간인 중앙 단체교섭으로부터 이탈해 갔다. 1990년 SAF는 중앙교섭단위를 해체했고, 1년 뒤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를 철수시켰다. 스웨덴 노동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 또한 1980년대 들어 그 제도적 기반인 중앙단체교섭 체계가 와해됨에 따라 더 이상 작동될 수 없었다. 그러나 LO는 중앙단체교섭이 와해된 원인인 자본주의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기득권들의 방어를 넘어서는 공세적인 운동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위기의 원인을 직시한 계급 통합적 운동보다는 자본의 위기에 조응하는 계급내부 특수이익 방어에 머물렀던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공세에 직면한 LO의 모든 요구는 (불황기에 불가능해진) 더 많은 재정지출과 중앙단체교섭 복원을 요구하는 즉자적인 방어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고, LO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반복적인 패배를 경험하며 쇠퇴했다. 반면 사민당의 오랜 집권에도 불구하고 학계, 언론계 등의 지식인사회 영역에 뿌리내린 오랜 부르주아적 권력은 건재했다. 거대하지만 오랜 집권과정에서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혁신의 전망을 세우지 못한 노동자운동은 거센 신자유주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소련사회주의권 붕괴 이후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어 이어졌고, 2000년대에 이르러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은 이미 여타 유럽연합 소속국가들의 사회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와 통화주의적 규범주의 정책의 전면화

1970년대 불황기에 스웨덴 사민당 정부와 우파정부는 모두 케인즈주의적인 수요부양정책을 가교로 삼아 불황을 건너뛴다는 일명 가교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가교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어 사민당 정부는 1980년대에 이른바 ‘제3의길’을 내세우며, 통화주의적인 규범정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제3의길 정책의 핵심은 ‘규범정책’이라고 불리는 시장주의적 정책개혁을 도입하는 것이다. 즉 완전고용보다는 물가안정을 중시하고, 단기적 임기응변적 처방(주로 케인즈주의적이거나 사민주의적 처방들)보다는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스웨덴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제3의길 정책 역시 1980년대 말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동산-금융거품을 야기함으로써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 후 1990년대 초반에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로써 스웨덴은 1992년에 제3의길 정책의 근간이었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 변질된 형태로 도입된 임노동자기금 또한 이때 폐지된다. 1993년부터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채택하였다. 또 1994년에 집권한 사민당 정권은(1994년~2006년)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개혁을 단행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이는 1990년대 들어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 또는 (시장)규범 정책적 합의를 사민당도 확고하게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LO는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왔다. LO는 특히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면서 수요부양정책을 요구했고, 무력화된 중앙집권적 단체교섭체계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러나 LO의 반대는 별다른 성과를 못 보고, 1990년대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자 LO는 점차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1996년 LISA프로젝트 보고서에서 LO는 “과도한 임금상승을 자제해야 하며, 노동시장정책은 인력의 이동성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약평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스웨덴 모델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소개하는 논의가 간혹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외부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보수주의적인 통화정책과 거대자본 중심의 성장주의적 경제정책이 결합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스웨덴 모델이 1980~90년대에 실패하면서 선택한 대안이 신자유주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신자유주의가 곤경에 빠진 상황을 놓고 스웨덴을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웨덴 모델은 말하자면 ‘일국 사민주의’인데, 그 골간은 일국수준의 계급타협에 기반한 국민경제적 성장모델이다. 스웨덴 모델은 자본주의적 성장과 수출지향 공업화전략을 기반으로 성립했다. 스웨덴의 경제모델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면서도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불황기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본연의 모습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케인즈주의적 수요관리정책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민당 내에서조차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일국적인 사민주의를 실현시키는 전제조건이었던 강한 고정환율 규범과 일국적인 금융통제체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초민족적인 금융세계화의 결과 사민주의적인 계급타협은 경제적인 토대를 잃어버리고 크게 변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웨덴 모델을 가능케 했던 다른 한 축은 강력하고 거대한 노동조합과 사민당정권의 코포라티즘 체제다. 그런데 스웨덴의 강력한 노동조합-사민당 권력은 애초부터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제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는 계급타협을 추구했다. 그 대신 노동조합-사민당 권력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몫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복지정책-정치에 힘썼다. 문제는 이러한 복지 분배정책-정치가 계급 내 분할과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고유한 문제점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복지정책은 필연적으로 비용부담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계급 간 분배개선에는 어느 정도의 구조적인 제한선이 있고, 계급 내 분배를 강화하게 된다. 복지의 수혜자와 부담자의 이해가 충돌하고,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실업자-취업 노동자, 노동빈민-상위계층 노동자 사이에서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의 이익이 갈등을 빚는다. 그 결과 복지정책-정치는 계급적 통합력을 형성하거나 계급주체 형성에 기여하기보다는 계급 내부 분할과 갈등을 양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복지정책-정치는 자본주의 지배체제와 함께 위기에 빠지면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분할을 확대한다. 나아가 이렇게 분할된 노동자 계급대중은 자본가 내부의 갈등에 손쉽게 동원되어, 노동-자본-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노동계급 집단을 공격하는 데 이르기도 한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 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 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 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 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 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 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가 민간부문 사용자협회인 SAF-사민당 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이라고 비판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인 <사회운동> 7,8월호에 실렸던 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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